지구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들은 100% 종교장사꾼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 있다고 신도들에게 속여서 종교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24. 8. 2. 12:08카테고리 없음

지구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들은 100% 종교장사꾼들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이 있다고 신도들에게 속여서 종교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영적으로 상당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을 4대 성인이라고 칭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4대 성인 역시 역사적으로 분명히 존재했던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신이 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단 성인의 반열에 오른 예수라는 훌륭한 인물을 주제로 애초에는 가르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각본과 같은 것들이 종교권력의 지휘와 비호 하에 2천 년에 걸쳐 수많은 수정에 수정을 거치면서 그 각본이 하나의 경전으로 포장되고 신은 아니지만 인간 예수 그를 신격화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우를 거짓진리 사기라 불러야 할 것이다.

 

인간 예수는 도마복음에서 자신이 신이 아닌 평범한 인간임을 스스로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도마복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자기 과시형과는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약 신이였다면 도마복음 15절과 같은 말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는 것이다.

 

기독교와 성경은 예수가 죽기 전 그가 누렸던 화려한 명성을 예수가 죽은 후에도 사실상 이어 가려는 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종교인 반면, 도마복음은 살아 있는 예수의 말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그렇다면 인간 예수를 신으로 찬양하고 숭배하는 기독교에서는 인간 예수가 도반과 청중들에게 진리를 설파한 기록물인 도마복음을 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진리라고 말하는 모든 성경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게 되면 종교장사는 끝나기 때문에 못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섬기는 종교들은 100% 사이비 종교가 확실히 맞다.

 

하늘 신, 태양 신, 예수 신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와 지구는 프로그램 되어 있는 되로 돌아갈 뿐이다. 하늘과 우주는 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물과 인간들에게 벌주는 기능이 없다. 그래서 천국이 하늘에 있다고 말하는 종교는 사이비종교이고, 하나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종교도 사이비 종교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100% 종교장사꾼들이 거짓진리를 신도들에게 세뇌 시켜서 금품갈취 노동착취를 위한 가짜성전인 것이다. 울며불며 간절하게 애원하면서 기도 해봐도 보고 듣고 있는 무엇인가 없기 때문에 응답이 없는 것이다. 요즘신은 검색만 하면 무엇이든 모두 가르쳐 주는 구글이 신이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종교단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존재하지 않는 신을 팔고, 천국을 팔고, 윤회사상을 팔고, 면벌부를 판 그 돈으로 목사 신부 등등의 가족들에게 안락한 삶을 위해서 쓰여 지고 있다는 것을 신도들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 신도 여러분들은 알아채고 깨어나시길 바랍니다. 근원적으로 볼 때 모든 신이란 것은 종교장사꾼들과 무속인 인간들이 지어내고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래서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생각이 지어내고 만들어 내는 것일 뿐 종교에서 주장하는 신 같은 것은 없다.

 

인간이 종교장사를 위해서 만든 기독교와 불교, 유대교, 정교회, 가톨릭, 이슬람교, 힌두교는 오랜 세월동안 성공한 사기극의 종교단체이다. 신이라고 말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은데, 신의 대리인이라고 스스로 자청하는 중, 교황, 대주교, 추기경, 신부, 목사, 등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종교이고 직책들이다. 신이란 것이 존재하지도 않은데 신의 대리인 이라고 말하는 것은 語不成說(어불성설)이다.

 

종교단체도 한국사회에 비정상을 정상이 되어버리게 한 것에 일부분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신도들에게 신이 있다고 거짓으로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단체들은 사회를 거짓세상으로 조장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양심이 작동하고 부끄러움과 염치를 아는 사람이 나라에 많이 살아야 사람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되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된다. 거짓진리와 허구 허상을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그 대가로 금품을 받는 것은 종교장사가 분명하고 사기이다.

 

도마복음에 인간 예수가 인간의 부활에 대해서 설교한 말이 있다. 인간은 죽으면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죽은 인간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칠 수가 없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구에 인간이 생겨나서부터 현재까지 부활한 인간은 단 한사람도 없다. 기독교에서는 인간 예수가 부활했다고 거짓말하여서 부활절을 만들고 신도들에게 거짓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은 소설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 예수가 베드로에게 천국을 열수 있는 열쇠를 주었다고 말하는데, 이 말은 기독교에서 꾸며낸 소설이다. 인간 예수가 살아생전에 도마복음에 육성으로 설교하는 것을 도마가 기록한 내용을 보면 인간 예수가 말하는 천국은 나라 왕국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으면 가는 하늘에 있는 천국은 거짓말이며 환상과 허상과 허구이다. 기독교에서 확인할 수 없는 것들을 신도들에게 환상과 허상을 심어주어서 신도들에게 세뇌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여서 협혈귀처럼 빨대 꽂아 빨아먹는 것이다.

 

이들의 종교들은 좋은 단어들과 무서운 언어들을 모두 끌어다 거짓경전을 만들어서 신도들에게 환상과 허상 허구를 반복적으로 심어주어서 세뇌시킨다. 무서운 언어를 사용해서 신도들을 겁을 주고 판단을 흐리게 하고 세뇌 시키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종교의 운영적 목적은 신도들에게 좋은 단어, 겁박단어, 나뿐 단어, 총동원하여 존재하지 않는 신으로 겁박하여 기부 받고, 겁박하여 금품갈취하고, 세뇌시켜서 노동착취를 하는 것이 종교장사꾼들이 종교단체를 운영하는 목적이다. 종교단체 운영목적이 신도들에게 금품을 받기 때문에 종교장사꾼이고 종교 사기꾼들이며 사이비 종교인 것이다. 우리 종교는 오래 되었고 신도가 많으니 사이비 종교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데, 니들 종교도 사이비 종교가 확실히 맞다.

 

도마복음 11~20절 본문의 해석요약

 

첫째 줄: 하늘 육체가 보는 물리적 세계의 하늘, 자아가 보는 영적 세계의 하늘, 모두 사라질 것, 물질적 존재의 무상함을 표현

 

둘째 줄: 육체가 죽은 자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나 살아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가 있다.

 

셋째 줄: 영적인 깨달음, 영적인 변화, 자아성찰과 같은 내적인 변화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이 없던 이전 상태 상태에서 내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넷째 줄: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육체 중심의 유아기를 벗어나 자아가 형성되면서 인간이 자아가 느끼는 내적 갈등의 상황에서의 선택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다. 예수는 11절에서 육체와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의 본질을 물리적 세계의 일시적인 본질과 영적 세계의 영원한 본질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11절은 현실에 대한 더 깊고 신비로운 이해 즉 물리적 세계는 일시적이며 환상이도, 존재의 진정한 본질은 의식 혹은 자아에 더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2절은 의로운 야고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특히 경건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지도자라는 그의 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에게 주어진 칭호라고 본다면, 이는 12절이 누군가에 의하여 작위적으로 추가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야고보는 경건하고 유대 율법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유대 율법을철저히배척하는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에 12절에서 예수는 어찌하여 유대 율법을 고수했다는 야고보를 제자들에게 지도자라고 말한 것일까! 12절이 과연 역사적 인간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에 예수의 육성에 의하여 세상에 등장한 것인지 더욱 의심을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기독교와 성경은 예수가 죽기 전 그가 누렸던 화려한 명성을 예수가 죽은 후에도 사실상 이어 가려는 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종교인 반면 도마복음은 살아 있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그런데 2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막힐 때마다 성경과 관련된 사례들을 가져오거나 혹은 예수를 성경이 주장하는 신의 아들 혹은 신과 동일시한 존재임을 전제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12절을 본래 예수가 전달 하고자 했던 의미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12절은 해석의 문제다. 도마복음은 현대가 아닌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예수가 말했던 말들의 의미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역을 해서는 제대로 해석이 될 수가 없다.

 

도마복음 영문번역 12절을 보면 GO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GO와 관련된 영어 숙어를 보면 단지 간다라는 의미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Go라는 단어는 항상 선택하는뭐뭐 할 것이다. 늘 찾는 이런 의미에서도 쓰인다. 왜 이것을 언급하는가 하면 12절을 해석함에 있어 GO를 단지 누구누구에게 간다는 부분만으로 해석을 하려 해선 12절의 해석이 엉뚱하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12절에서 예수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단순명사적인 그 무엇이라면, 12절에서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문 하고자 했던 것은 진짜 중요한 것은 차기 리더를 정하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이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추구해야 할 무엇 인가를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도마복음 전체를 아울러 예수가 계속 강조하는 부분과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또한 12절 후미에 등장하는 그를 위하여 하늘과 땅이 생겨났느니라. 하는 부분도 54절에 등장하는 하늘나라가 가난자의 것 이라는 부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13절은 다섯 번째 줄은 토마스가 자신의 잣대로 측정한 거품이 이는 샘물에 취해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예수가 토마스와 공유 한 영적 통찰력과 가르침에 대한 비유다. 마지막 줄의 토마스가 언급한 은 분노가 내포된 힘이나 영적 계시가 변화 시키는 힘을 나타낼 수 있다. 끝부분의 토마스의 대답 부분은 예수가 토마스에게 말한 것을 그가 동료들에게 공유할 때 동료들이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강렬한 감정적 반응에 대한 은유에 해당한다.

 

그것은 또한 토마스가 그의 동료들이 예수 그에게 전해준 지식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구절은 영적 진리를 표현하는 어려움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영적 경험의 필요성에 대한 비유로 해석 될 수 있다. 또한 영적 통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영적인 통찰을 나눌 때 사람들이 직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저항이나 적대감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도마복음 13절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주제는 도마복음이나 마태복음의 기초가 되었다는 마가복음 모두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당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입을 빌리면 예수가 살아서 주로 활동하던 지역에서 예수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당시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거나 통일된 표현이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마복음 원문과 현재 성경을 비교하면 성경속의 죽은 예수가 갑자기 그리스도이니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둔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마가복음에 없던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마태복음에 새롭게 등장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이마가복음을뛰어넘는 소설임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당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었다면 마가복음에도 당연히 그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은 분명 매우 다른 의미다.

 

둘째: 마가복음 829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자 예수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예수가 왜 그런 경고를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의문을 당연히 가져야 합리적이다. 성경 속 예수는 온 세계를 구원하러 온 구세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당시 예수는 어째서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성경은 예수의 죽음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라 해왔는데 정작 예수는 자신을 숨기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자신이 진정 구세주그리스도이었다면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정도의 강단을 가진 자였다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고 숨길 것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야 정상일 것이다.

 

14절은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과 유대교라는 특정 종교적 관점 두 방향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14절을 바라보았을 때 14절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은 세 번째, 네 번째, 단락으로서 자신에게 이롭도록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존경 혹은 호감을 얻기 위하여 자선을 베푸는 것은 영적인 깨달음을 구하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금식이나 기도가 아닌 선행 그리고 친절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데 집중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는 올바른 말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14절은 결론적으로 영적 순결을 어떤 것을 통해 구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것이다. 예수는 이를 올바른 행동과 말에서 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이 아닌 유대교의 당시 성경이었던 지금의 구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한다면 14절은 앞에서 보았던 6절의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다.

 

14절은 당시 유대인들의 경전인 토라에대한 역사적 인간 예수의 배척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구절 중 하나이다. “14절을 통하여 예수는 유대교인들의위선적이고,“ 구약에 바탕을 둔세계관을 매우 싫어했음을알 수 있다. 인간 예수가 극도로 배척했던 유대교의경전이예수가 죽은 그를 신으로만든“ ”기독교인들에의하여 만들어진“ ”성경의“ ”절반을“ ”차지해“ ”왔다는“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다. 인간 예수가 현재 구약성경이되어 있는 당시 유대교를바라보는관점에대한 이해를 통해우리는 조작과 새빨간“ ”허구로“ ”범벅이“ ”되어“ ”있는“ ”기독교“ ”성경의“ ”민낯을 새롭게 직시하게되었다.

 

15절은 18절과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절이다. 15절과 18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반어적 문장이 활용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15절은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를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또한 15절은 예수 자신 역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육체가 아닌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5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경험의 영역을 넘어 영적 진리를 찾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없으며, 이후에 증보판 작가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부터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역사적 증거를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15절과 같은 부분들을 통해서도 인간인 예수를 본격적으로 신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부터 시작되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마태 누가 이전의 바울 역시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15절 후미에 등장하는 아버지라는 표현은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름으로서 평범한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현대인들은 영적으로 상당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을 4대 성인이라고 칭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4대 성인 역시 역사적으로 분명히 존재했던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신이 된다?! 이치에 맞지 않다. 단 성인의 반열에 오른 예수라는 훌륭한 인물을 주제로 애초에는 가르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각본과 같은 것들이 종교권력의 지휘와 비호 하에 ”2천 년에 걸쳐 수많은 수정에 수정을 거치면서 그 각본이 하나의 경전으로 포장되고 신은아니지만 그를 신격화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우를 사기라불러야할 것이다.

 

이렇듯이 15절을 통하여 인간 예수는 자신이 신이아닌평범한” “인간임을” “스스로” “분명하게” “선언하고있다. “도마복음 곳곳에서“ ”확인할수 있는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자기“ ”과시형과는거리가멀었던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약 신이였다면 15절과 같은 말씀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는 것이다.

 

16절은 제자들이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해야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가 분열적이고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은유적 표현 방법이다.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이 의견 충돌과 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모든 도마복음의 해석도 그러하지만 우리는 17절을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적 인간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도반과 청중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던 그 당시를 바탕에 두고 17절을 대하는 것이 우선 이다.

 

17절은 당시 틀에 박힌 유대 율법(지금의 구약성경 부분에 해당 된다)노예나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알려줄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 예수는 인간이 살아 있는 육신의 몸이 그 생을 다하기 전에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설파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17절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이 하나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29절이 도마복음 17절과 매우 유사 하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도마복음을 인용했다는것은 당시 도마복음이 이미 수준 높은 정론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7절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도마복음을 기준으로 볼 때 기존 성서들이 도마복음 17절과는 시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도마복음 17절은 예수말씀의 시점이 미래지향적이지만 성서의 유사 구절들 특히 마태복음 1317절의 경우 이미 완성된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 1317절은 은연중에 예수 자신이 선지자나 의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존재임을 부각하려 하고 있다.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본성에 매우 어긋나는 부분이다.

 

18절은 인생의 본질 즉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자가 누리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다. 15절의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육체가 아닌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름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시작점에 있는 자를 축복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는 죽음의 의미를 알 것이므로 죽음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19절의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한 자는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를 의미한다. 나무는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 받아들이게 되는 불변의 진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8절에 이어 인생의 본질인 영적인 깨달음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당시 살아있는 인간 예수가 제자들 혹은 청중을 대상으로 설교를 할 때에 과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것들을 전달하려고 하였을까 하는 부분이다.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너무 어렵게 접근한다면 자칫 당시 예수가 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20절의 비유는 전반적으로 하늘 왕국이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믿음과 영적 성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존재의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영적인 깨달음이 없는 상태인 지금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영적으로 깨닫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다.

 

하늘을 빙자하여 금품을 노리는 무당과 사이비종교 목사, 신부, 중들 종교지도자라고 말하는 종교장사꾼들이 신도들에게 하늘을 이용하여 겁박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세뇌시키는데 이용하고 있다. 노예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멍청한 얼간이 신도 노예들아 확인도 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한번쯤은 뒤돌아보고 확인 해보아라. 멍청한 얼간이 신도 노예들아 깨어나라. 누군가의 지식 지혜 또는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조사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내가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가 무엇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내가 누군가를 사리분별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누군가를 무조건 찬양하고 숭배하는 것은 매우위험하고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거짓종교에 의지하고 살아가는 노예근성을 가지고 있는 노예들아 인간의 운명 같은 것은 없다. 순간순간 나의 생각과 말 그리고 두 길 중에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흥하고 망하는 것이다. 두 길이 나뿐 길만은 아니다. 한길은 흥하는 길이고 다른 길은 고뇌 속에 깨달음의 길이다. 하늘은 인간의 吉凶禍福(길흉화복)과 운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여도 하지 않는다. 하늘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종교와 무당 등이 만들어낸 말이다. 하늘에 있는 태양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골고루 비추어 준다. 살인자, 도둑놈, 사기꾼, 죄인들에게는 햇볕을 반만 비추어 주고 착한 사람에게는 많이 비추어 주지 않는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의 운명과 길흉화복에 대해 관여하지 않는다. 하늘의 뜻으로 정해진 인연이다 이런 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말이라서 의미 없는 거짓말이다. 무엇인가 추진하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사람이 최선을 다했으니 잘되지 않으면 하늘의 뜻이라고 말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그런 벌을 주지 않으며 관여하지 않는다. 하늘이라는 것은 인간의 운명을 자지우지 하지도 않으며 관여하지도 않는다.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가 전도 타겟으로 삶는 부류들은 사회약자계층, 노인계층, 장애인계층 등등이 있다. 특히 시골교회들은 연세 많은 노인 분들에게 전도를 열심히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재산이 조금 있으면 빨아먹기 위해서 환장하고 전도를 한다.쉽게 말하면 종교장사 사기꾼들은 재산 많은 노인들은 최고의 먹잇감이다.종교단체들에게 사업자와 똑같이 세금 내는 법 만들고, 신도들에게 금품을 받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면 종교장사꾼들은 아무도 종교단체를 운영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만든 모든 종교는 종교장사꾼과 종교 사기꾼이 운영하는 단체인 것이다. 신도 여러분들 알아차리고 깨어나세요.

 

교황 대주교 추기경 신부 목사 이런 자들은 자기 몸에서 발생되는 진동주파수 에너지가 발생되는 것이 매우 미약하기 때문에 사물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없는 자들이 존재하지 않는 신의 대리인 행세를 하면서 신도들에게 천국팔이, 윤회사상, 면벌부를 팔아먹은 금품으로 자기들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은 알아차리고 깨어나라.

 

그 무엇인가 보고 듣고 있는 아무것도 없고,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허공에다 울며불며 기도해봐야 기도가 될 리가 없다. 여리고 여린 인간들은 하늘을 매우 무서워한다. 하늘을 숭배하는 종교도 여러 종교가 있다. 하느님, 하나님, 태양신, 천신, 옥황상제 등등의 말들은 종교장사꾼과 무당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인간들은 적들에게 저주를 내릴 때 이런 말들을 한다? 하늘이 진노하여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하늘이 진노하여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이 진노하여 반드시 처단할 것이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벼락 맞아 뒤질님, 하늘은 두 번을 똑 같은 기회를 주지 않는다. 등등의 말을 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으면서 하늘을 찬양하고 숭배한다. 하늘은 모든 생물과 인간에게 벌주는 기능은 없다. 하늘에 있는 태양은 지구에 있는 모든 생물들에게 골고루 비추어주며, 특정개인의 살인자, 도둑놈, 사기꾼이라 하여도 태양은 모든 생물들에게 똑같이 비추어 준다. 하늘은 인간이 기도하는 것과 찬양하고 숭배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인간 예수가 살아있을 때 도반들과 청중들의 거룩한 정신이 깨어나게 하려고 육성으로 진리를 설파한 것을 기록한 도마복음 (GOSPEL OF THOMAS) 11절부터~20절까지

 

1,원문 구조 분석

 

(11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 천국은 사라질 것이요.(11B) 그 위에 있는 천국도 사라져 없어 질 것이다.(11C) 죽은 것들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요.(11D) 산 것들은 죽지 않으리라.(11E) 너희가 빛 가운데 있을 때 너는 어찌 하겠느냐?(11H) 네가 하나(one) 였던 시절에 너는 둘이 되었다.(11I) 그러나 네가 둘이 되면, 너는 어찌 하겠느냐?(11J)

 

(12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분의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12a) 당신이 우리에게서 떠나가실 것을 압니다.(12b)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될까요?(12c) 예수께서 말씀하셨다.(12D) 너희가 어디에 있던지(12E) 의로운 야고보” (James the Just) 에게 의뢰하라.(12F) 그를 위하여 하늘과 땅이 생겼느니라. (12G)

 

(13A)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13A) 나를 다른 것들과 비교해서(13B) 나를 평가해 보거라(13C) 시몬 베드로가 말했다.(13D) 당신은 의로운 전령 (Messenger) 같습니다.(13E) “마태가 말했다.(13F)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습니다.(13G) “도마가 말했다.(13H) 선생이여, 당신은 무엇과 같은지(13I) 나의 입으로는 묘사 할 수 없나이다.(13J) “예수께서말씀하셨다.(13K) 나는 너의 선생이 아니다.(13L) 네가 마셨기에(13M) 내가 만들어 낸 방울 샘물 (Bubbling Spring)로 네가 취했음이라.(13N) 이러시고 그를 데리고 물러 가사(13O) 그에게 세 가지를 말씀 하셨다.(13P) “도마가 돌아오자 친구들이 물었다.(13Q)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는가?(13R) “도마가 그들에게 말했다.(13S) 그가 말한 것 중 한 가지라도 너희에게 애기 해 주면(13T) 너희가 돌을 들어 나를 칠 것이요.(13U) 불이 그 돌들로부터 나와 너희를 삼킬 것이다.(13V)

 

(14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금식한다면(14B) 너희 스스로에게 죄를 불러 올 것이며(14C) 네가 기도 한다면 저주 받을 것이요.(14D) 적선을 베풀면 너의 영혼을 손상시킬 것이다.(14E) 너희가 어느 지역에 가던지(14F) 사람들이 너희를 맞아 대접하는 음식을 먹을 것이요.(14G) 그들 가운데 병든 자들을 고쳐 주어라.(14H) 결국 입안으로 들어가는 것이(14I) 너희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요.(14J) 네 입에서 나오는 것이 너희를 더럽히느니라.(14K)

 

(15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의 몸을 통하지 않고(15B) 세상에 나온 자를 보거든(15C)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하라.(15D) 그는 너의 아버지(Father)이니라(15E)

 

(16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사람들은(16B)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 알 것이다.(16C) 그들은 내가 대립(Conflict)을 주러 온 줄 모른다.(16D) , , 전쟁(16E) 왜냐하면 한 집에 다섯 식구가 있되(16F) 셋이 둘을 둘이 셋을(16G) 애비가 자식을(16H) 자식이 애비를 대적하며(16I) 각각 홀로 서리라(16J)

 

(17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어느 눈도 본적이 없는(17B) 어느 귀도 들은 적이 없는(17C) 어는 손도 만져 본 적이 없는(17D) 인간의 가슴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을 주겠노라(17E)

(18A) 그분의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

세상 마지막이 어떻게 올지 말해 주십시오.(18B) 예수께서 말씀하셨다.(18C) 마지막 날을 알고자 함은(18D) 너희가 시작(Beginning)을 앎이뇨?(18E) 너희도 알다시피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느리라.(18F) 시작에 서있는 자에게 축하하나니(18G) 그가 마지막을 알 것이요.(18H)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18I)

 

(19A)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존재하기 전에 존재하게 된 자를 축하하나니(19B)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어(19C) 나의 말을 명심하였으면(19D) 이 돌들이 너희에게 복종하리라.(19E) 왜냐하면 너희를 위한 천당에(19F) 다섯 그루의 나무가 있어(19G) 그 들이 여름 겨울에도 변하지 않으며(19H) 그것들의 잎들도 떨어지지 않나니(19I) 누구든 그것들을 알면(19J)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19K)

 

(20A) 그분의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

천국이 무엇과 같은지 일러주십시오.(20B) 예수께서 말씀하셨다.(20C) 그것은 겨자씨와 같아(20D) 씨앗 중에 가장 작으나 좋은 토양에 떨어지면(20E) 커다란 식물을 내고(20F) 공중의 새들의 안식처가 되느리라.(20G)

 

2, 주 해석

 

1)본문

11, 예수가 말하기를 하늘도 사라지리라. 그리고 이 하늘위에 있는 저 하늘도 사라지리라. 죽은 자들은 살아있지 아니하다. 그리고 살아 있는 자들은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죽은 것을 먹던 그 날에는 너희는 죽은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만들었도다. 너희가 빛 속에 거하게 되었을 때는 관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너희가 하나였던 바로 그 날에 너희는 둘이 되었도다. 그러나 너희가 둘이 되었을 때 과연 너희는 무엇을 할 것이냐?

 

2)해석

첫째줄: 하늘, 육체가 보는 물리적 세계의 하늘, 자아가 보는 영적 세계의 하늘, 모두 사라질 것, 물질적 존재의 무상함을 표현,

 

둘째 줄: 육체가 죽은 자들은 자신을 영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나, 살아있는 자들은 영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기회가 있다,

 

셋째 줄: 영적인 깨달음, 영적인 변화, 자아성찰과 같은 내적인 변화의 과정을 통해 깨달음이 없던 이전 상태 상태에서 내적으로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넷째 줄: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육체 중심의 유아기를 벗어나 자아가 형성되면서 인간이 자아가 느끼는 내적 갈등의 상황에서의 선택문제에 대하여 질문하고 있다. 예수는 11절에서 육체와 자아가 동시에 존재하는 영역의 본질을 물리적 세계의 일시적인 본질과 영적 세계의 영원한 본질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11절은 현실에 대한 더 깊고 신비로운 이해, 즉 물리적 세계는 일시적이며 환상이도, 존재의 진정한 본질은 의식 혹은 자아에 더 가깝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본문

12,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이 언젠가 우리를 떠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아나이다. 누가 우리의 지도자가 되오리이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었다. 너희가 어느 곳에 있든지 너희는 의로운자 야고보에게 갈 것이니라. 그를 위하여 하늘과 땅이 생겨났느니라.

 

2)해석

12, 의로운 야고보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특히 경건하고 도덕적으로 올바른 지도자라는 그의 명성을 나타내기 위해 예수의 형제로 알려진 야고보에게 주어진 칭호라고 본다면 이는 12절이 누군가에 의하여 작위적으로 추가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특히 야고보는 경건하고 유대 율법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도마복음에서 예수는 유대 율법을철저히배척하는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에 비추어 볼 때에 12절에서 예수는 어찌하여 유대 율법을 고수했다는 야고보를 제자들에게 지도자라고 말한 것일까! 12절이 과연 역사적 인간 예수가 살아 있을 당시에 예수의 육성에 의하여 세상에 등장한 것인지 더욱 의심을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기독교와 성경은 예수가 죽기 전 그가 누렸던 화려한 명성을 예수가 죽은 후에도 사실상 이어 가려는 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종교인 반면, “도마복음은 살아 있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기록물이다.

 

그런데 약 2천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막힐 때마다 성경과 관련된 사례들을 가져오거나, 혹은 예수를 성경이 주장하는 신의 아들, 혹은 신과 동일시한 존재임을 전제로 해석하려는 경향은 12절을 본래 예수가 전달 하고자 했던 의미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매우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면 12절은 해석의 문제다. 도마복음은 현대가 아닌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예수가 했던 말들의 의미를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역을 해서는 제대로 해석이 될 수가 없다.

 

도마복음 영문번역 12절을 보면 GO라는 부분이 등장한다. GO와 관련된 영어 숙어를 보면 단지 간다라는 의미만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Go라는 단어는 항상 선택하는뭐뭐 할 것이다. 늘 찾는 이런 의미에서도 쓰인다. 왜 이것을 언급하는가 하면 12절을 해석함에 있어 GO를 단지 누구누구에게 간다는 부분만으로 해석을 하려 해선 12절의 해석이 엉뚱하게 전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12절에서 예수가 강조하고자 했던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단순명사적인 그 무엇이라면, 12절에서의 예수가 제자들에게 주문 하고자 했던 것은 진짜 중요한 것은 차기 리더를 정하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자들이 이루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추구해야 할 무엇 인가를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도마복음 전체를 아울러 예수가 계속 강조하는 부분과 맥이 닿아 있을 것이다. 또한 12절 후미에 등장하는 그를 위하여 하늘과 땅이 생겨났느니라 하는 부분도 54절에 등장하는 하늘나라가 가난자의 것 이라는 부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본다.

 

1)본문

13, 예수가 그의 따르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를 무엇엔가 비교해 보아라. 그리고 내가 무엇과 같은지 말해 보라,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의로운 천사 같나이다. 마태가 예수께 말하였다. 당신은 현명한 철학자 같나이다. 도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스승님이시여! 제 입은 지금 당신이 무엇과 같은지 전혀 언표 할 수 없나이다. 예수가 말하기를 나는 그대의 스승도 아니오라. 그대는 내가 보살펴온 부글부글 솟아오르는 광천 샘으로부터 직접 많이 마셨기에 취하였도다. 그리고 예수께서 도마만을 데리고 은밀한 곳으로 가시었다. 그리고 도마에게 세 마디말씀을 전하였다. 도마가 그의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을 때에 그들이 도마에게 물었다. 예수께서 너에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뇨. 도마가 그들에게 대답 하였다. 내가 예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 중 하나만 너희에게 이야기해도, 너희들은 돌을 주워 나를 쳐 죽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 손에 있는 그 돌로부터 불길이 솟아 너희들을 삼켜버릴 것이다.

 

2)해석

13, 다섯 번째 줄은 토마스가 자신의 잣대로 측정한 거품이 이는 샘물에 취해 있음을 암시한다. 이것은 예수가 토마스와 공유 한 영적 통찰력과 가르침에 대한 비유다. 마지막 줄의 토마스가 언급한 은 분노가 내포된 힘이나 영적 계시가 변화 시키는 힘을 나타낼 수 있다. 끝부분의 토마스의 대답 부분은 예수가 토마스에게 말한 것을 그가 동료들에게 공유할 때 동료들이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강렬한 감정적 반응에 대한 은유에 해당한다.

 

그것은 또한 토마스가 그의 동료들이 예수 그에게 전해준 지식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믿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구절은 영적 진리를 표현하는 어려움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납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개인적인 영적 경험의 필요성에 대한 비유로 해석 될 수 있다. 또한 영적 통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다른 사람들과 영적인 통찰을 나눌 때 사람들이 직면할 수 있는 잠재적인 저항이나 적대감을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그리고 도마복음 13절을 이해함에 있어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부분들을 반드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주제는 도마복음이나 마태복음의 기초가 되었다는 마가복음 모두에 등장하는 내용인데 당시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입을 빌리면 예수가 살아서 주로 활동하던 지역에서 예수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당시 예수가 어떤 인물인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거나 통일된 표현이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도마복음 원문과 현재 성경을 비교하면 성경 속의 죽은 예수가 갑자기 그리스도이니 혹은 하나님의 아들로 둔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마가복음에 없던 하나님의 아들이란 표현이 마태복음에 새롭게 등장하는 부분에서 우리는 마태복음이마가복음을뛰어넘는소설임을알게 된다. 그 이유는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었고 당시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이었다면, 마가복음에도 당연히 그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세주와 하나님의 아들은 분명 매우 다른 의미다.

 

둘째: 마가복음 829절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표현하자 예수는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예수가 왜 그런 경고를 했는가에 대하여 우리는 의문을 당연히 가져야 합리적이다. 성경 속 예수는 온 세계를 구원하러 온 구세주로 표현되고 있는데 당시 예수는 어째서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을까. 성경은 예수의 죽음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이라 해왔는데 정작 예수는 자신을 숨기는 삶을 살았던 것이다. 자신이 진정 구세주(그리스도) 였다면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정도의 강단을 가진 자였다면 세상 두려울 것이 없고 숨길 것이 없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야 정상일 것이다.

 

1)본문

1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금식 한다면너희는 너희 자신에게 죄를 자초 하리라. 그리고 너희가 기도한다면, 너희는 정죄되리라. 그리고 너희가 구제 한다면, 너희는 너희 영혼에 해악을 끼치리라. 너희가 어는 땅에 가든지, 한 시골 동네를 거닐게 될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영접하면, 그들이 대접하는 음식을 그대로 먹으라.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있는 병자를 고쳐주어라. 너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너희를 더럽힐 수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너희를 더럽히는 것은 너희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라.

 

2)해석

14절은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과 유대교라는 특정 종교적 관점 두 방향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우선적으로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에서 14절을 바라보았을 때 14절에서 핵심에 해당하는 부분은 세 번째, 네 번째, 단락으로서 자신에게 이롭도록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존경 혹은 호감을 얻기 위하여 자선을 베푸는 것은 영적인 깨달음을 구하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도록 가르치고 있다.

 

또한 예수는 제자들에게 금식이나 기도가 아닌 선행 그리고 친절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데 집중하도록 권하고 있으며, 마지막 구절에서 예수는 올바른 말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14절은 결론적으로 영적 순결을 어떤 것을 통해 구할 것인지에 대하여 논하고 있는 구절이라 할 것이다. 예수는 이를 올바른 행동과 말에서 구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반적인 종교적 관점이 아닌 유대교의 당시 성경이었던 지금의 구약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방향에서 접근한다면 14절은 앞에서 보았던 6절의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다.

 

14절은 당시 유대인들의 경전인 토라에대한 역사적 인간 예수의 배척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구절 중 하나이다. 14절을 통하여 예수는 유대교인들의위선적이고,“ 구약에 바탕을 둔세계관을 매우 싫어했음을알 수 있다. 인간 예수가 극도로 배척했던 유대교의경전이예수가 죽은 그를 신으로만든“ ”기독교인들에의하여 만들어진“ ”성경의“ ”절반을“ ”차지해“ ”왔다는“ ”사실은“ ”매우충격적이다. 인간 예수가 현재 구약성경이되어 있는 당시 유대교를바라보는관점에대한 이해를 통해우리는 조작과 새빨간“ ”허구로“ ”범벅이“ ”되어“ ”있는“ ”기독교“ ”성경의“ ”민낯을“ ”새롭게 직시하게되었다.

 

1)본문

15, 예수가 말하기를 너희가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를 볼 때에는 너희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경배하라 그 이가 곧 너희 아버지니라.

 

2)해석

15절은 18절과 그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는 구절이다. 15절과 18절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반어적 문장이 활용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15절은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즉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영적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를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라는 비유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구절이다. 또한 15절은 예수 자신 역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육체가 아닌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것에 대하여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5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경험의 영역을 넘어 영적 진리를 찾도록 노력하게 하는 것이다. 성모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마가복음이나 요한복음에는 없으며, 이후에 증보판 작가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부터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다. 역사적 증거를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15절과 같은 부분들을 통해서도 인간인 예수를 본격적으로 신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부터 시작되었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마태, 누가 이전의 바울 역시 동정녀 마리아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15절 후미에 등장하는 아버지라는 표현은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름으로서 평범한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은 초월적 존재를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현대인들은 영적으로 상당한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인물들을 4대 성인이라고 칭하며 존경하고 있다. 그러나 4대 성인 역시 역사적으로 분명히 존재했던 인간이지 신이 아니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영적인 깨달음을 통해 상당한 경지에 올랐다고 신이 된다? 이치에 맞지 않다. ‘성인의 반열에 오른 예수라는 훌륭한 인물을 주제로 애초에는 가르침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각본과 같은 것들이 종교권력의 지휘와 비호 하에 ”2천 년에 걸쳐 수많은 수정에 수정을 거치면서 그 각본이 하나의 경전으로 포장되고 신은아니지만 그를 신격화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히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경우를 사기라불러야할 것이다.

 

이렇듯이 15절을 통하여 예수는 자신이 신이아닌평범한” “인간임을” “스스로” “분명하게선언하고 있다. “도마복음 곳곳에서“ ”확인할수 있는역사적 인간으로서의 예수는 자기“ ”과시형과는거리가멀었던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만약 신이였다면 15절과 같은 말씀을 할 이유가 더더욱 없는 것이다.

 

1)본문

16, 예수가 말하기를 아마도 사람들은 내가 이 세상에 평화를 던지러 온 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내가 이 땅 위에 충돌을 던지러 온 줄을 알지 못한다. 불과 칼과 싸움을 선사하노라. 한집에 다섯이 있게 될 때, 셋은 둘에, 둘은 셋에, 아비는 아들에게, 아들은 아비에게 대항할 것이기 때문이니라. 그리고 그들은 모두 각기 홀로 서게 되리라.

 

2)해석

16절은 제자들이 어려운 선택을 하는 것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해야하기 때문에 그의 메시지가 분열적이고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은유적 표현 방법이다. 심지어 가정 내에서도 예수의 가르침이 의견 충돌과 분쟁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1)본문

17, 예수가 말하기를 나는 너희에게 여태 눈이 보지 못한 것, 귀가 듣지 못한 것, 손이 만지지 못한 것, 사람의 마음에 떠오르지 아니한 것을 주리라.

 

2)해석

모든 도마복음의 해석도 그러하지만 우리는 17절을 이해함에 있어서 역사적 인간 예수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상대로 설교를 하던 그 당시를 바탕에 두고 17절을 대하는 것이 우선 이다.

 

17절은 당시 틀에 박힌 유대 율법(지금의 구약성경 부분에 해당 된다)노예나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알려줄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서 당시 예수는 인간이 살아 있는 육신의 몸이 그 생을 다하기 전에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설파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구절이다. 17절과 관련하여 특이한 점이 하나있다. 그것은 사도 바울의 고린도전서 29절이 도마복음 17절과 매우 유사 하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도마복음을 인용했다는것은 당시 도마복음이 이미 수준 높은 정론으로 인정받고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17절과 관련하여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도마복음을 기준으로 볼 때 기존 성서들이 도마복음 17절과는 시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차이는 도마복음 17절은 예수말씀의 시점이 미래지향적이지만 성서의 유사 구절들, 특히 마태복음 1317절의 경우 이미 완성된 과거형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마태복음 1317절은 은연중에 예수 자신이 선지자나 의인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는 존재임을 부각하려 하고 있다. 도마복음에 나타난 예수의 본성에 매우 어긋나는 부분이다.

 

1)본문

18,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우리의 종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에게 말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말하기를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느뇨? 그러하기 때문에 너희가 지금 종말을 구하고 있느뇨? 보아라!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을지니라. 시작에 서있는 자여, 복되도다. 그이야말로 종말을 알 것이니,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2)해석

18절은 인생의 본질 즉 영적인 깨달음을 얻는 자가 누리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구절이다. 15절의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육체가 아닌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름으로서 새롭게 태어나는 시작점에 있는 자를 축복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는 죽음의 의미를 알 것이므로 죽음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1)본문

19, 예수가 말하기를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한 자여, 복되도다. 너희가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 내 말을 듣는다면 이 돌들도 너희를 섬기게 되리라 왜냐하면 너희를 위하여 파라다이스에 다섯 그루의 나무가 준비되어 있나니, 그 나무는 여름과 겨울에 따라 변하지도 아니하며, 그 잎사귀는 덜어지지도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 나무들을 아는 자는 누구든지 죽음을 맛보지 아니 하리라.

 

2)해석

19절의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한 자는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자를 의미한다. 나무는 영적인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섰을 때 받아들이게 되는 불변의 진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8절에 이어 인생의 본질인 영적인 깨달음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구절이다.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당시 살아있는 인간 예수가 제자들 혹은 청중을 대상으로 설교를 할 때에 과연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의미를 가진 것들을 전달하려고 하였을까 하는 부분이다.

 

도마복음을 해석함에 있어 너무 어렵게 접근한다면 자칫 당시 예수가 전달하려 했던 것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1)본문

20,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가로되, 하늘나라가 어떠한지 우리에게 일러 말하기를, 그것은 한 알의 겨자씨와 같도다. 겨자씨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로되 그것이 잘 갈아 놓은 땅에 떨어지면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식물을 내니, 하늘의 새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니라.

 

2)해석

20절의 비유는 전반적으로 하늘 왕국이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믿음과 영적 성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존재의 상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아직 영적인 깨달음이 없는 상태인 지금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일지라도 영적으로 깨닫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하는 구절이다.